'과일값 높아 시장개방 필요' 농민분통    “과일값 비싸니 수입개방…”일부언론 보도 “같은 공산품이라도 품질과 기능에 따라 값 차이가 있듯이 과일 역시 품질이나 재배방법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가격을 비교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최태림 한국농업경영인 경북도연합회장) 단순히 몇개 과일가격을 비교해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과일을 사먹고 있다는 식의 비교는 시장개방 파고 속에서 우리 농업을 지켜나가는 전체 농민을 매도하는 짓이고 영농의욕을 꺾는 것입니다.”(공원석·전북 남원시 금지면) 최근 일부 신문과 방송이 ‘국내 과일값 세계 최고 수준’ ‘과일값 비싸 서울시민 허리 휘어진다’는 등 국내 과일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값을 낮추기 위해 과일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논조의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자 농업인은 물론 학계·생산자단체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시장의 과일값이 비싸다고 수입개방으로 풀자는 논리는 농업을 희생시키자는 의도이며, 이를 현실화할 경우 국내 생산기반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업인 김기홍씨(52·전북 부안군)와 이명희씨(44·충북 보은군)는 “최근 쌀협상과 관련해 중국의 사과·배 문제가 불거져 안그래도 과수농가들의 실망이 큰데 이럴 때 소비자들이 비싼 과실을 사먹는다고 주장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잦은 자연재해로 한해 농사를 망치는 농업인들의 아픔은 헤아리지 않고 일시적으로 비싼 과일가격을 편향적으로 보도하는 방송이나 신문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김창곡 나주배작목회연합회장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고품질 친환경 배 생산을 위해 40명의 작목반원이 대량으로 기능성 물질 한가지만 구입하는 데도 7,500만원이 투입될 정도로 생산비가 많이 들고 있다”면서 “온 정성을 쏟아 배를 재배해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특품비율은 절반가량에 그치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도 15%에 달해 특품가격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 않으면 생산비조차도 건지기 힘든 형편”이라고 밝혔다. 감귤 농사를 짓는 이영윤씨(52·제주 북제주군)는 “지난해 과수원 2,000여평을 팔아 급한 빚을 갚았는데도 아직도 부채가 남았다”며 “7년가량 감귤값이 계속 하락해 어려움이 많았다가 지난해에야 감귤값이 올라 숨통이 트였는데 언론보도대로 값이 낮아야 정상이라면 농가부채는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태림 한농연 경북도연합회장은 “만약 보도 논리대로 모든 과일이 수입돼 우리 농민들이 밀농사처럼 사과나 배 등 과일농사를 폐업할 경우 우리 국민은 국산 과일 자체를 먹을 수 없게 된다”며 “사과·배 등 과일은 주식이 아니라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과일가격이 가계를 휘청하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박철선 충북원협 조합장은 “냉해로 품귀인 사과를 왜 하필이면 비교대상으로 삼았는지 모르겠다”며 “배나 밤 등을 대상으로 삼았으면 가격지수가 확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철준 울산배원예농협 조합장은 “현재 국산 사과·배·단감이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은 수입국 입장에서는 자국시장에서 우리 과실이 자국산보다 높은 가격에도 팔릴 수 있기 때문인데도 이번 보도행태는 이 같은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국내 농산물값은 공급이 5%만 초과해도 폭락하고 5%만 부족해도 폭등하는 유통현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권용대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값은 단기적인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등락이 심한 경향이 있다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수년간 계속해서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각에서 과일값이 비싸다고 지적하는 논리대로 한다면 결과적으로 농업소득의 상승폭도 커야 하지만 우리 농업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권교수는 “각종 농자재값과 운송·유통비 등의 인상도 고려돼야 하며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가격 측면에서 과일값은 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의 체감지수만 반영해 농산물값의 상승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반면에 폭락기 때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시장을 왜곡시키는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광주=김계홍, 청주=구영일, 대구=한형수, 대전=이경석, 제주=강영식, 전주=양승선, 성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