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미곡처리장’    지금도 재고 넘치는데 올가을 어떻게… 공공비축제 도입을 뼈대로 한 새로운 양정제도는 수확기 쌀 매입을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사실상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추곡수매제 폐지로 올해 정부 매입량이 지난해보다 200만섬 정도 줄어든 300만섬에 불과할 전망인 데다, 민간 유통업자들도 수입쌀 시판 등을 이유로 매입을 기피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농협이 수확기 쌀 대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농민신문이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는 농협 조합장 등 관계자 10명을 대상으로 ‘미곡처리장이 처한 현실’에 대해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판로 확보의 어려움 등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쌀 유통대란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재고량 심각하다=문용수 전북 김제 공덕농협 미곡종합처리장장은 “쌀 재고량이 지난해 같은 때보다 30% 정도 많은 농협이 지역에 적지 않다”며 “쌀값 추가 하락을 우려한 유통업자들이 매입을 꺼려 재고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창한 충북 청원 오창농협 조합장도 “쌀을 당장 처분하고 싶지만 출혈이 불을 보듯 뻔하고, 그나마 거래도 안된다”고 밝혔고, 조성명 충남 당진 신평농협 미곡종합처리장장은 “쌀 20㎏ 한가마당 4만2,500원씩 받고 팔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4만원에도 못미치는 저가미가 유통되고 있어 답답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임창석 전남 해남 옥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소장은 “전남지역 미곡종합처리장의 경우 2월 말 기준 영업실적이 지난해 같은 때보다 38% 줄어들 정도로 재고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산물벼 인수가격 너무 높다=지난해 가을 사들인 산물벼를 정부로부터 인수받는 가격이 조곡 40㎏ 한가마당 5만4,000원에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면서 산물벼 인수 거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김병원 전남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은 “산물벼를 5만4,000원에 인수받으면 쌀 20㎏ 한가마를 4만1,500원 이상 받고 팔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면서 “그러나 저가미가 많이 나돌아 산물벼 인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호 충남 서산 대산농협 조합장도 “산물벼를 시가보다 높게 인수받으면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고, 임창석 소장은 “현재 거론되는 가격으로 산물벼를 인수받으면 미곡종합처리장 1곳당 평균 5,000만원 정도의 경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판로는 불안한데 계약물량은 늘고 있다=김용호 조합장은 “수확기 판로를 우려한 농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계약재배면적을 지난해보다 갑절 정도 많은 1,500㏊로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밝혔고, 서경수 울산 농소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소장은 “계약물량이 지난해보다 2,000t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수확기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조성명 장장은 “쌀시장 상황이 불투명해 계약물량에 대한 단가계약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고, 정성기 경기 화성 수라청연합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장은 “흔히들 ‘경기미는 판매 걱정 없어 좋겠다’고 말하지만 계약물량이 대폭 늘어나면 판매가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노후화된 시설 고품질 쌀 걸림돌=김병원 조합장은 “고품질 쌀 생산시스템은 어느 정도 가동되고 있으나 가공·유통시스템은 잘 가동되지 않고 있다”면서 “원인은 미곡종합처리장의 시설 노후화”라고 지적했고, 김영준 강원 양구 대암농협 조합장은 “완전미 생산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4억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문용수 장장은 “각종 보조사업이 균특회계로 이관되면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군 지자체들이 자부담 등을 이유로 보조사업을 기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미곡종합처리장 시설 현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원병 경북 경주 안강농협 조합장은 “미곡처리장이 엄청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획기적인 지원대책을 세워야 국내산 쌀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