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수입품이라도 큰 상관없다’는 식으로 급변하고 있다. 대형마트를 찾은 한 소비자가 바나나 등 외국산 과일을 고르고 있는 모습. 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원산지? 굳이 따지지 않고 사요” “요즘 체리(양벚) 많이 사먹어요. 원산지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세계화 시대인데 원산지 크게 따질 거 있나요. 그냥 달고 아이들도 좋아해서 자주 사먹는 편이에요.” 유명 대형마트에서 만난 20~30대 주부들의 말이다. 바나나를 고르고 있던 40대 주부도 “예전에는 농약 걱정도 되고 괜히 꺼림칙해서 수입 과일은 안 먹었는데 요즘에는 워낙 흔한 데다 대형마트에서 파니까 믿고 사먹는다”고 말했다. 수입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믿을 수 없어서’ 혹은 ‘정서에 맞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수입 농산물 구입을 꺼렸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수입 농산물을 일상적 식품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입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아 농산물을 구입할 때 원산지나 안전성을 따져본다는 소비자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맛이나 당도를 따지는 소비자가 월등히 많아졌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소비자시민모임 성남지부가 2004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3.6％가 농산물을 구입할 때 원산지와 농약 등 안전성을 가장 우선시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불과 3년 후인 2006년 aT(농수산물유통공사)가 주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과일을 살 때 맛과 당도를 고려한다는 응답이 50.7％에 달한 반면 안전성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수입 농산물 구매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5월 수입 상품 구매 의향에 대한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입 농산물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가 55.2％에 달했다. 이는 공산품인 수입 자동차 구매 의사를 밝힌 소비자(42.9％)보다 12.3％포인트나 높은 수치라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방증이다. 대형마트 농산물 담당 바이어들도 이 같은 소비자 인식 변화를 실감한다는 반응이다. 이마트의 한 농산물 판매 담당자는 “지난해 이맘때 칠레산 포도의 당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신맛이 강한 하우스〈거봉〉포도를 홍보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며 “소비자들이 과일을 살 때 국산이냐 외국산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당도를 따지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식 변화로 인해 대형마트들은 해외 직수입 등을 통해 수입 농산물 취급에 앞장서고 있고, 이는 소비자들의 수입 농산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수입 농산물이니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의 관계자는 “대형마트들이 마진이 큰 줄 알면서도 몇년 전까지 수입 농산물 취급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수입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라며 “최근엔 수입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져 대형마트들이 수입 농산물 취급에 적극적이고, 아예 해외 직수입에 눈을 돌리는 대형마트도 많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수입 농축산물 구매를 위해 특정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스트코홀세일인데, 이곳을 찾는 고객의 상당수가 수입 쇠고기 등 특정 수입 농축산물 구매를 목적으로 한다. 3만5,000원에 달하는 연회비와 특정 회사의 신용카드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등 이용에 불편한 점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일부는 인터넷에 ‘코스트코 체험기’를 올리는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코스트코홀세일 양재점의 경우 연15%의 매출성장률을 기록하며 인근의 농협 하나로클럽과 이마트 등을 위협하고 있다. 박종하 ㈜농협유통 전무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로 인해 애국심에 기대 국산 농산물 애용을 호소하는 마케팅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안전성·품질·신선도 면에서 국산농산물 이용이 소비자들에게 실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수입 농산물과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산 농산물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신토불이’는 이제 새로운 변신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상희·남우균 기자 montes@nongmin.com [최종편집 : 2007/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