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언론에 농업은 없다 장 프랑소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이 목가적인 농촌 풍경을 담은 것으로 아나 그렇지 않다. 1857년 그가 이 작품을 내놓자 비평가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그저 눈에 비친 농촌풍경을 화폭에 옮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낟알을 움켜쥐는 여인의 손, 멀리서 짚단을 이고 걷는 여인들, 그리고 보일까 말까 하는 현장감독의 말 탄 모습이 그 시대를 살아간 농군의 힘겨운 삶을 말하고도 남는다. 프랑스에서는 150년 전에 밀레가 수탈의 채찍에 눌려 사는 농민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아 고발했다. 그가 지평선을 납빛으로 채색했던 그곳에는 아직도 불만에 차있는 모양이다. 외신은 가끔 그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전하곤 한다.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222%에 달하는 농업국가인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미국의 세계화 전략이 지구의 농촌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온 몸으로 항거하고 그곳의 언론은 그것을 잘 전한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될 쯤에만 해도 한국언론은 농업기사를 연일 무게 있게 다루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자세를 질타하는가 하면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는 언론의 보도자세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개방농정에 편승하여 오히려 농업을 공격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지난 연말을 전후하여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이 세 차례나 무산됐다. 그러자 언론은 마치 국가경제가 곧 거덜나는 것처럼 난리를 피웠다. 국회가 국익을 저버렸다며 농촌지역 출신의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항거하는 농민들을 국익을 모르는 과격한 집단으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쌀 추가개방이 또 다시 농촌경제에 태풍을 몰고 오고 있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명운이 걸린 절박한 문제다. 하지만 언론보도에서는 미풍도 감지하기 어렵다. 지난 총선거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직능대표의 성격을 지닌 비례대표가 크게 늘어났지만 어느 정당후보에도 농민의 이익을 대변할 인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또 그것을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신문은 지면이 3~5배나 늘어 넘쳐나고 방송은 공익성·공공성을 강화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농업기사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2년 전 흉년이 들어 쌀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쌀은 300만 농가의 주소득원이다. 그런데 언론은 어떤 근거로 기사가치를 판단했는지 그것을 1~2단으로 취급하는데 그쳤다. 때 아닌 3월 폭설로 축사고 인삼밭이고 비닐하우스며 폭삭 주저앉아 철거조차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언론은 그 처참한 실상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느 사회나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농민이다. 왜 그들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일 만큼 과격해진 것일까? 적자영농과 농정실패를 목청 높여 호소해봐야 위정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마저 귀를 주지 않는다.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세력을 규합하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언론의 무관심이 농민의 급진화를 불렀고 그것이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언론도 이제 광고주의 이익만 생각 말고 식량안보도 고민하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시사 평론가 ekim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