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봄을 잊은 농촌의 시름 봄이 왔지만 빚더미에 눌린 농심은 서글프기만 하다. 계절을 잊은 폭설로 삶의 터전이 폭삭 주저앉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엇을 심으려고 궁리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 걸핏하면 파동이 나고 값이 폭락하니 말이다. 그나마 정부수매를 믿고 벼농사에 매달려 왔는데 그것도 끝장났다. 그저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해는 유독 어려운 한해였다. 돼지콜레라가 번진다더니 조류독감이 퍼져 오리고 닭이고 떼죽음을 당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생겼다고 쇠고기를 마다했다. 싸구려 수입 농산물이 홍수를 이룬다. 채소류나 양념류는 물론이고 일손이 들어가는 것은 아예 중국에서 만들어서 가져온다. 품삯을 더니 웬만한 식당은 그것을 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마저 비준되어 그곳 농산물이 밀물처럼 몰려올 판이다. 미국산 오렌지가 제주도의 감귤나무를 뿌리째 뽑아냈다. 오렌지값이 싸니 사과나 배도 값이 뚝 떨어졌다. 이미 칠레산 포도가 겨울 과일시장을 휩쓸었다. 과일농사도 언제 그만 두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쌀도 올해를 고비로 시장의 문이 활짝 열리나 보다. 쌀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든지 수입확대에 따른 농가피해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시장개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경제정책의 초점은 농업을 벗어나고 언론도 무관심하다. 10년 전에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될 때만 해도 여론은 따뜻했다. 쌀 협상을 잘못했다고 농림수산부장관이 경질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많은 국민들은 쌀만은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나 학계에 비교우위론자가 득세하다보니 농업포기론에 동조하는 세력이 만만찮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를 반대한다고 절규했지만 돌아온 것은 곤봉세례뿐이었다. 수출을 해야 잘 사는데 언제까지 농업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따위가 이 나라 지도층의 반응이었다. 언론은 그것을 반대한 국회의원들을 국익을 저버린 ‘농촌당’이라고 매도했다. 1980년 여름은 날씨가 서늘하여 벼가 패지 않았다. 큰 흉년이 들자 이 나라 저 나라에 구걸하다시피 사정해서 값을 몇배나 더 쳐주고 사왔다. 캘리포니아 쌀을 다 사오고도 모자라 일본, 대만은 물론이고 멀리 스페인에서도 사왔다.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식량자급률이 26.7%로 떨어졌다. 쌀을 자급하니 이나마도 유지된다. 그런데 쌀이 남아돈다고 정부가 농지를 축소하겠단다. 논밭의 절반쯤은 없애고 그곳에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이다. 민족의 장래를 식량 메이저에 맡기겠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식량안보를 모르는 인사들이 큰소리를 치니 나라꼴이 모양이다. 일본과 프랑스의 농민은 인구비율에 비해 정치적 발언권이 세다. 농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를 의사당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4·15 총선에서는 농민의 이익을 말하는 사람을 골라 뽑도록 해야 한다. 시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