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농산물 산지유통 활성화 조건 선진국의 농산물 산지유통실태를 돌아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가지 측면에서 상반된 느낌을 가진다. 우선 농산물 산지유통센터 등과 같은 하드웨어 부문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유통시설이 더 나은 경우가 많을 정도다. 이는 하드웨어 부문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가 선진국에 못지않게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 농산물 산지유통 발전에 커다란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그러나 시설부문에 대한 투자가 산지 유통 및 마케팅 수준에 비해 과잉투자된 부분이 많아 그만큼 부실화의 우려도 높다. 다음으로는 매우 정교하게 조직화된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감탄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통 및 마케팅이라는 과정을 중심에 놓고, 농업인·협동조합·상인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 역할을 분담하고 협동·경쟁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농협을 통한 공동선별·공동출하·공동계산의 움직임이 일부 선진지역의 사례로 나타나고 있고, 최근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은 극도로 낮은 수준이다. 현재 농산물 산지유통의 움직임은 이런 추세에다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이력제도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통한 경쟁력 배양 ▲농가소득 제고를 위한 유통 및 마케팅 과정의 다양성 추구 ▲시장교섭력 강화 등의 과제가 맞물려 농업인들만의 노력으로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유연히 대처해나갈 수 있는 농업인들의 대응 능력이고, 협동조합과 농업인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만큼 유통·마케팅사업에 대한 협동조합의 관심과 노력의 결합이 요구된다. 특히 농산물 유통 시설부문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농업인과 협동조합간의 조직적 결합이 이뤄지고, 산지의 수준과 필요성에 따라 산지유통시설에 대한 투자가 있을 때 비로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나은 시설을 가지고 유통 및 마케팅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참여와 훌륭한 결과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하드웨어 방면의 투자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까지 건설된 산지유통시설들이 농산물 산지유통에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산지유통시설에 대한 최근의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커다란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즉 협동조합과 농업인간의 결합을 통한 산지공동마케팅시스템 정착을 위한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부문의 건실한 발전에 바탕을 둔 하드웨어부문의 효율적인 발전이 조화롭게 이뤄질 때 비로소 농산물 산지유통의 효율성과 장점이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권 승 구 〈동국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skkwon@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