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호 본지 객원논설위원·전 조선일보 취재부장 세계는 지금 가히 ‘곡물전쟁’시대에 돌입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재해와 경지면적 감소, 인구 증가, 옥수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 등 갖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전 지구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모자라고 재고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 곡물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최근 식품업체 농심이 라면과 스낵의 소비자가격을 평균 11.3% 인상한 사례에서 보듯, 국제 곡물가격 상승이 국내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비단 소비자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축산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한우 사육농가의 경우 1㎏당 사료가격이 1년 전 280원에서 450원으로 60% 올랐고, 돼지 사료값은 올해 들어서만 10% 급등해 축산농가들이 줄줄이 도산 공포에 떨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개선될 기미도 없이 앞으로 더욱 심화돼, 우리 가정경제에 적지 않은 주름살을 지게 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 우세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국제 곡물 메이저들은 엄청난 자본과 정보력을 앞세워 주요 곡물을 마구 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투기적 행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곡물 투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9세기 말 인도에서는 유례없는 흉작 속에서 곡물 투기 광풍이 불어 자본가는 물론, 심지어 보석 상인과 옷감 판매상들까지 물건을 저당 잡히고 곡물을 매점매석했다. 이로 인해 식량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결국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들만 피해를 입었다. 농민신문이 최근 잇따라 ‘애그플레이션 공습’ 시리즈를 통해 농지의 안정적 확보, 식량자급률 제고, 공격적인 해외농업 개발을 촉구한 것이나, ‘유전자변형(GM) 식품 불가피한 선택인가’ 등 야심찬 기획물을 마련한 것도 우리의 농업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 농업은 이른바 시장론자나 비교우위론자들에 의해 그동안 홀대받아온 게 사실이다. 정작 농산물이 석유 등 다른 어떤 원자재나 생산품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인지를 진작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이제 국민들도 어느 때보다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갈증 등 농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졌다. 따라서 농림수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및 기관은 물론 학계·생산자단체·식품업계·농민 등 농업 관련 모든 구성원들이 심기일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주도면밀한 계획과 과감한 실행에 나선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길은 열릴 것이다. 모름지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던가. shryu50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