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병 훈 전북농협 양곡판매사업단장 햅쌀 출하가 본격화됨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대형 유통업체들이 기획행사 명목으로 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에 쌀 저가납품을 요구하고 있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유통재벌들이 이윤추구를 위해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쌀값을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쌀 소비 확대를 위해 기획판매를 한다고 주장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쌀값 결정의 주도권을 이미 대형 유통업체에 넘겨준 상황에서 이들의 저가납품 요구는 새삼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쌀 소비가 현저히 줄고 있는 데다 고정 거래처 확보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대형 유통업체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응할 수밖에 없다고 산지 관계자들은 하소연한다. 수많은 경쟁자들이 원가 이하 공급 의향서를 대형 유통업체 바이어들에게 은밀하게 내밀어 줌으로써 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고 마는 쌀 과잉공급 구조 때문이다. 이같이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쌀 유통시장에서 쌀 보유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시켜 주겠다는 거대 자본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소비자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저가미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고 이 같은 소비자의 주권행사를 강제할 수도 없는 것이 냉엄한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보니 쌀 생산농가 및 농협 관계자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주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더라도 대한민국 농업을 대표하는 쌀을 볼모로 농업과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 대형 유통업체의 시장왜곡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쌀 없는 부국강병이나 쌀 없는 통일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임을 배웠다. 우리민족에게 쌀은 단순히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이기 이전에 겨레의 혼이자 피와 살이었던 것이다. 쌀을 미끼상품화하고 상업적 이기의 재물로 삼으려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저가납품 요구 행위는 국내 쌀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민족혼을 짓밟는 매국행위와 다를 바 없다. 최근 대형 유통업체의 시장 왜곡행위를 근절시키고 영세업자와의 상호 공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키 위해 대점법(대규모 소매점포법)을 손질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대형 유통업체의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를 근절시키고 건전한 쌀 산업기반이 조성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우리 겨레의 혼이자 피로 대변되는 쌀을 더이상 대형 유통업체가 휘두르는 권력의 횡포 앞에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O063-240-3142. [최종편집 : 2006/12/01]